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문답법, 산파술등으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니
대화중에 너의 이성을 충분히 사용하되, 너가 막히는 부분에서는 니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하여라
는 식으로 사람들을 가르쳤다.
사람의 인식은 그 사람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서 생긴 인식은 통찰이라고 했다.
이런식으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숨은 허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것은 아테네의 권력자들에게는 불편한 사건이었고, 소크라테스는 사형에 처해질 수 밖에 없었다.
"아테네는 게으른 암말과 같다. 그리고 나는 의식을 깨우기 위해 말의 옆구리를 찌르는 등에와 같다"
자신은 게으른 암말을 깨우는 등에였기 때문에
자신이 등에임을 포기한다면 자신은 더이상 살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사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반해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이는
사형직전에 자신이 틀렸음을 고백하고 법정을 돌아 나온다.
그리고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성인이고
갈릴레이는 자신의 목숨을 아깝게 생각한 소인배였을까?
핵심은 다른곳에 있다.
나의 장인이 말하길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일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신념을 저버리고 사는 일은 죽는일 보다 더 힘들다.
하지만 사실(fact)를 위해서 죽는것은 아까운 일이다. 사실은 언젠간 밝혀진다. 한사람의 죽음으로써 그 사실이 좀더 빨리 밝혀진다는 것이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다.
다른예로 생각해보자. 예를들어 요즘 핫한 518같은 경우에.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서 광주로 달려갔던 독일 기자를 살펴보자.
그 독일기자로 인해서 518이 더 자세히 밝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광주의 일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세월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를일이지만
따라서 그 독일 기자가 혹시 죽었다면 그것은 개죽음 이었을까?
아니 그것은 그 사람의 신념의 문제이다.
그 독일기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학살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그것에 대해 침묵하는 일이 그것을 밝히다가 죽는일보다 더 힘든일이었다.
이처럼 세상의 행동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합당하기도하고, 아니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어떨까?
사회를 위한 죽음은 합당하고, 자연을 위한 죽음은 어리석다고.
너무 민족주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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