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떻게 보니 시리즈 물이 될듯 하다.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1. 정선 벽탄초, 2년반의 이야기.

내가 12년 9월에 첫발령날때 전교생 15명,

게다가 5학년이 7명인가 8명이어서이 애들이 졸업하면 분교 or 폐교의 위기였던 학교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한번 했던것 같기도 하고? 그때 윤모 교무 선생님이 9월 3일 (1,2일이 주말이었음) 전에 나와서 8월말부터 아이들을 지도해줄 수 있으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9월 1일자로 교감으로 발령나는 선생님이 계셨고, 그 선생님도 마지막에 연가를 사용해야 했으니, 신규발령전에 나와서 미리 지도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지금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지만 나의 대답은 '내가 책임질 수 없어요' 였다.

교무선생님은 내말에 바로 수긍하셨고, 9월 3일부터 출근키로 했다. (첫인상 쓰레기였다.)

내가 그말을 한 이유는 군대 생활에서 한창 날카로워져있을때,

그리고 군대에서 수도없이 경험한 너의 책임, 나의 책임이라는 멘트들,

병이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도 책임지고 내 책임하에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이 없었고, 하고싶은 일도 내가 책임지지 못해서 못하고, 하기싫은 일도 거절하기 힘들었다.

012345

12년전의 나, 젊다. 그리고 말랐다.

 

벽탄초에서 있었던일들을 기억나는대로 적자.

1. 내가 학교에 가족들과 함께 갔는데 2층에서 왠 여선생님 한명이 내려왔다. 어려보였다. 난 9월 신규고 걔도 3월 신규였고 나이는 동갑이었다. 걔랑 지금 같이 살고 있다.

2. 윤모 교무선생님은 연말에 있는 성과급 회의에 유일하게 B등급을 받은 나에게 자기의 성과급을 떼어 준다고 했다. 내심 고마웠다. 하지만 다음해 성과급을 받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기다렸던 내가 바보)

3. 와이프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당시에 나는 결혼이라는 퀘스트를 빨리 깨버리고 싶은 마음의 조급증이 있었다. 26살이었는데, 와이프가 참 괜찮았다.

여름이라 해가 긴데, 퇴근을 하고 난뒤에 걔는 학교 벤치에서 동네 풍경을 그렸다. 미술과라고 했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난 갤럭시a를 쓰고 있었는데 처음들어본 블랙베리 휴대폰을 사용했다.

4. 지금은 없어진 나의 관사에서 (구)최주무관님과 동거를 했다. 나이는 7살인가 차이었는데 참 좋은 분이셨다. 당시에 나는 차도 없었는데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어디든 데려다 주신다고 했다. 그말은 진심이었다. 리얼로 등산이 취미이신 분이었다. 등산동호회에서 남들이 안다니는 길로 등산을 가신다고 했다. 당시에 등산 어플? 인가? 그걸로 길을 찾아가는데, 산1개당 인앱구매비용이 5천원정도였던걸로 기억한다. 너무 좋은분이셨는데 주말에 등산가실때 와이파이를 꺼놓고 가셨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부탁해서 켜두고 가셨던걸로 기억한다. 

카레를 만들어 주셨는데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가스레인지가 없고 부르스타 하나로 밥을 해먹었다. 카레는 생소한 비주얼이었다. 카레국에 가까웠다. 남자 둘이 자취하는데 나름 좋았다. 

내 방은 아주 조그만 방이었고, 더블사이즈의 전기매트를 놓으면 방문이 덜 열렸다. 중고로 컴퓨터 한대를 구입했는데, 생각해보니 2019년 오송 파견때까지 썼다. 레고르였던것 같고, 나중에 프로푸스로 업그레이드를 했다. 오버도 좀 했던것 같다. 당시에 와우를 했던것 같다. 하다가 너무 시간을 많이 뺏겨서 더이상 할수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와이프랑 만나면서 접었다. 둘다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5. 처음에 6개월은 그냥저냥 지나가다가 13년도가 되었는데 체육이랑 생활을 맡았다. 지금은 이해가 안되는데 12년도 말에 마지막날에 윤모 교무선생님은 도망치듯 비밀로 내신을 쓰고 가셨다. 그리고 그 자리는 그의 친구의 아내가 왔다. 지금 보니 다들 탐내는 자리라서 그들끼리 그렇게 돌려 먹기를 했던것 같다. 승진하기에 좋은 자리였다.  (그래서 다들 교장교감이 되었다)

체육이랑 생활을 하는데 당시까지만해도 동기들끼리 연락하던 때라 다들 내 업무가 많다고 했다.

당시에 교사가 5명이었는데, 교장+윤모교무+33살 여선생님+나+와이프 였다. 학교가 어떻게 굴러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13년도인지 14년도인지에는 이유는 기억이 안나지만, 교사가 1명 늘었다. 40세정도의 전라도가 고향이고 아이들이 4명을 가진 다둥이 선생님이었다. 와이프는 집에서 살림을 했다. 치위생사셨나? 내 기억엔 자기가 스케일링을 할줄아니 오라고 하셨다. 처음엔 평범하다 생각했는데, 나와 와이프를 데리고 동박골 식당에 가서 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동박골 식당에 어른4+아이4가 갔다. 주문은 곤드레밥 4개였다. 처음에 자리를 앉을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애매했다. 아이4는 대략 초1, 5살 3살 1살 뭐 이랬다. 아무튼 식사를 4개만 주문하고 집에서 락앤락통에 싸온 밥을 주섬주섬꺼내더니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반찬들을 그 통에 다시 담아갔다. 특이한분이라고 생각했다.

생활력이 강하다는게 정확한 표현일듯하다. 아이들을 씻기기위해 주문진 수련원에 가장 작은 원룸을 빌려 거기서 목욕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방학이나 일요일에 집에 에어컨이 없으니 학교에 가족들과 함께 와서 에어콘을 쐬고 계셨다. 

자기는 외벌이고 자기는 고향에 가서 집을 짓는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꿈을 이루신지 잘 모르겠다. 강원도에서 전라도까지 한번에 가는것이 힘들어서 충청도로 내신내고 그다음 전라도로 가고 뭐 이러신다고 했다.

 

6. 너무 길어지는데 그래도 몇가지만 더 적자

정선에 동기가 한명있었다. 김한x라고 프라이드를 타고 다녔다. 내기억에 생각보다 프라이드 차가 좋아서 깜짝 놀랬다. 여러 이야기를 했고, 나름 의지가 되었다. 전도사와 결혼을 했는데 당시에 난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교사가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왜 결혼을 하냐라고 영어로 질문을 했다. 그녀는 왜 영어로 질문을 하냐고 했다. 나는 아무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참 그땐 어렸다. 몸도, 마음도.

 

7. 교장이 도망치듯 가버렸다.

징계먹고 온 교장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능력자였다. 본인은 전교조에 의한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중임이 도교육청까지 통과했는데, 박근혜인지 이명박인지 안된다고 짤랐다. 도망치듯 가버렸다. 나중에 정리하러 와서 밥을 먹었다. 억울하다고 했지만 돌이킬 순 없다고 했다. 

 

8. 차를 샀다.

원주 출장이 있었고 그냥 내가 가겠다고 했다.

내기억에 7시반쯤 차를타고 읍내에 가서, 8시부터 9시까지 대기, 후에 9시차를 타고 원주들어가면 11시, 정보원까지 버스로 30분을 타고 가서 1시에 연수를 들었다. 연수가 5시쯤? 끝난것 같고 다시 버스를 타고 원주터미널 정선에 도착하니 8시반인가? 였다. 내가 있던 벽탄초 버스 막차가 8시였다. 택시를 타고 복귀했다.

차를타면 편도 1시간 30분~2시간 거린데 아침 7시반에 나가서 저녁 9시에 들어왔다. 차를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출퇴근을 걸어서 하는데 연에 2.5만씩 3년을 탔다. 어딜 그리 돌아다닌지 모르겠다.

 

8. 행정실장과 트러블이 있었다.

수학여행인지? 답사를 갔는데 파주였다. 수학여행은 아닌것 같고 아무튼 2박3일쯤되는 여행이었다.

나도 그때 돈에 민감했던터라 파주를 가는데 광역버스비를 받고 다녀오기가 싫었다.

가기전에 실장과 이야기를 했다. 여 실장이었고, 내가 알기론 학교에 비정규직으로 들어왔다가 전환된 분이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이런분이 꽤 있다.

전환된분들이 잘못되었다 문제있다는것이 아니라 그녀는 일을 잘 몰라서 적극적으로 행정을 하려고하지 않는다.

가기전에 실무편람을 찾아보니 이렇게 출장비 정산하는 방법이 있으니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해준다고? 아니면 생각해보겠다고? 아니면 알겠다고 했다. 

 

갔다와서 주유비+톨비+주차비+갔다온 거리를 네이버에서 작성해서 보내주었다.

 

실장은 그런 정산은 안된다고 했고, 교장에게 가서 이런사정이 있음을 이야기 했다. 난 규정에 있는데 왜 안되냐고 했다. 실장은 선생님 차의 연비는 어떻게 되나요? 이렇게 나를 떠보기도 했다.  (난 규정에 나와있는대로 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규정에는 디젤, 가솔린 기준연비가 적혀있다.)

결론은 교장이 교육청에도 물어보고 이래저래한 후에 나에게 안된다고 이야기 했다. 교장이 그렇게 오더하면 그렇게 따르겠다고 했다. 이런 정산은 다음해였던가? 수학여행 사전답사 등에는 그렇게 하라고 지침이 내려왔다. 2023년에 답사를 갈때는 그렇게 신청하질 않았다. 나도 뭉툭해졌다.

 

9. 발령받고 한달있다가인가? 수학여행을 갔다.

당시에는 사전답사를 안가던 때다. 키자니아를 갔는데 짠사람은 그렇게 오래 시간을 보낼데인줄 몰랐던것 같다. 그래서 한시간정도로 잡아둔것 같은데 실제로는 3시간 4시간있을 수 있는 곳이라서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수학여행중 회의를 했다. 난 군대물이 바싹 들어서 예약된 식당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윤x교무선생님은 그냥 그돈을 버리고 교회에서 들어온 돈이 있으니 그돈으로 저녁을 사먹고 애들을 여기서 더 놀리자고 했다. 그땐 좀 위계적이라고 할까? 그런 분위기였던것 같다. 지금이라면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을텐데, 그땐 나도 딱딱한 군인물이 덜빠졌을때다. 아무튼 거기서 좀더 놀고 밥먹으러 갔다.

 

10. 교육감이 왔다. 

교육감이 와서 잔뜩 쫄아있었든데 별것 아니었다. 그도 그냥 실적 및 공보활동용 자료가 필요했고, 우리학교가 적당했으리라 생각한다. 후에 작은학교살리기라는 운동이 펼쳐지면서 정말 순수하게 학교가 없어지지 않도록 여러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달랐다. 교무는 6학급이 안되도록 교묘하게 5학급을 유지하고자 했다. 점수 때문에. 학부모들에게는 6학급이 되면 보건선생님도, 영양선생님도, 학교 급식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고 홍보했던것 같다. 아무튼 홍보가 잘되었는지 7명이 졸업하던해에 7명이 들어왔고, 학교는 꾸준히 유지되었다. 지금 10년쯤 지났나? 한번도 6학급이 된적이 없다. 급식은 자체적으로 하고있더라. 내 관사는 신안 여교사 사건 이후에 부숴졌고, 천연잔디를 한번 해볼까 했는데, 인조잔디정도는 되어있더라. 

 

11. 마지막 그림엽서공모전

MBC에서 갤럭시랑 함께 그림엽서 공모전을 했다. 

갤럭시노트랑 함께했기 때문에 폰으로 그리든 진짜 엽서를 꾸미든 둘중에 하나였다.

당시에 나를 위한 선물이라면서 카멜인가? 낙타가 로고인 미국 중고사이트에서 노트10.1 2014를 직구했다.

그것가지고 와이프한테 해보라고 추천했고, 왠걸

와이프가 전국에서 대상을 받았다.

당시에 네이버 동영상 시작에 와이프가 갤럭시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노트4도 한대 선물 받았다. 상금도 꽤있었던것 같은데 2백정도? 아니었을까? 기억이 안난다.

삼성측에서 학교에와서 광고 촬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에 학교 홍보에 환장을 하던 교장은 삼성측과 학교 홍보 인터뷰를 했다. 삼성에서는 애들만 찍어가고 싶었는데, 와이프를 통해서 바득바득 이것도 해야한다고 우겨서 찍었는데, 역시나 통편집이었다. 교무는 이기회에 학교 컴퓨터실에 있는 모든 컴퓨터를 삼성에서 바꿔주었으면 했다. 바득바득 우겨 교실용 TV하나를 받았던것 같다. 

학교시설개선을 하는게 물론 나쁜건 아닌데, 왜 그렇게 하려고한건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내것도 아닌데 말이다.

주인의식이 높아서 그런거였다면, 리스펙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