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 개론을 들었다.(김영석교수)
오늘은 평범하게 평생교육의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리 시험준비를 할때 한번 봤던 내용이라 이해하긴 어렵지 않았다.
평생교육은 공교육제도에 대한 부정에서 부터 시작한다.
공교육 제도는 국가의 니즈(노동력 개발, 군사력 증강, 공공질서 유지)와
개인의 욕구(지식에 접근할 확실한 수단, 신분상승의 기회)가 만나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교육이라는것을 국가가 독점하면서 여러 폐해가 생겼다.
1. 이데올로기 주입의 수단으로써 교육(학교)가 이용되었다.
(보편적이라는 가치하에 자민족 중심의 선입견이 주입되었다.)
하지만 학교교육은 대중의 정치인식을 발달시켜 결과적으로 자신을 무너뜨리게 만들었다.
2. 교수의 측면에서 보았을때 학교교육은 인간의 본성과 학생의 독특한 요구를 충족시킬수 없었다.
특히나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경시되었다.(신체와 감정의 발달, 예술을 통한 자기 표현, 과학기술과 친숙성 등)
새로운 것의 창조 보다는 재생산에 집중되었다.
3. 사회적 선발과 관련하여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고 있다.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제도적인 문제를 학생의 개인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재생산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것들은 어느정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면서 이런것들은 교육의 위기를 가지게 되었고, 평생교육이라는 맥락하에서 교육의 목표, 구조, 교육과정, 방법 들을 수정해야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평생교육의 의미-평생교육은 매우 복잡한 개념이다.
1. 교육 개념의 변형
사람들은 교육이란 나중에 닥쳐올 직업사회를 위한 준비의 단계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평생교육이 지향하는 지속적인 학습을 통하여 전문자질을 개발하고, 지적 정서적, 도덕적 잠재능력을 키우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려면 학교의 역할은 변해야 한다.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미래 성인들에게 사진의 의사를 표현하고 서로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시사점 - 학교는 가르쳐야 한다. 언어의 숙달, 집중력과 관찰력 개발, 정보를 획득하는 장소와 방법의 습득, 타인가 함께할 수 있는 능력들을
2. 교육자는 현대인의 삶의 현장에서 요구되는 모든 형태의 교육과 훈련에 대하여 완전하고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개인의 생애는 매시기마다 독특하고 가치있는 경험 + 미래에 대한 준비의 시기이다.(이중적)
아동 뿐만아니라 청소년, 성인, 장년, 노인 다 마찬가지다.
단계마다 개인의 존재는 완전하게 영위될수 있어야 하며, 즐거움과 만족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각 과정에서 만족을 맛볼 수 있는 여부는 다가올 시기를 얼마나 준비를 잘하였는가에 달려있다.
하지만 학교는 그들의 발달을 억압하고, 그나이에서 경험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육을 받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업압당하는 현상을 초래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평생교육은 포괄적으로 조망하여 전체를 유기적으로 보고 사회교육체제를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교육의 체제도 정비할 수 있다.
&여기서드는 의문점은 개인의 발달정도가 다르고 각 개인의 인생이 다를때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가능한가. 오히려 개인에게 맡겨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자유주의적이고 이상적이라면 개인을 일정한 케이스로 나누고 제공 해야하는데, 개인을 케이스로 분류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오히려 또다른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너무이상적이지는 않은지, 끊임없는 요구 분석 및 반영의 결과로써 가능한것인지(현실적으로 가능할까)
3. 평생교육은 성공과 실패에 대한 양분적인 입장보다는 다차원적인 입장을 가지고 여러 성공과 실패 가운데서 하나의 실패, 하나의 성공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되면 개인들은 성공 실패 여부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발휘하고 계발하는데 목료를 두게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쩔수 없이 선발이라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다.
4. 개인의 퍼스낼리티 발달을 위한 교육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리속의 하나 보다는 스페셜원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 시대에 무엇인가 기여를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한다.(논문)
하지만 학교 교육은 인간 개성(개인의 차이)를 반영하기 힘들다.
또한 시험과 학위제도는 개인의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역사적, 지정학적 능력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착한 학생인가 아닌가만 구분하고 있다. ->실제적인 일상생활과 개인 발달의 법칙을 경시한다.
5. 평생교육과 현대사상
지식은 역사성(신의 계시가 아니라 변화가 가능하다)
과학적 사고(정답만을 향해가지 않고 편린된 지식을 잠정적으로 재인식하고 검증하여 발전시켜나간다)
상대성(시간, 공간적으로 다르다)
이세가지 특성에 따라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안내해야한다.(공부시켜야한다)
많은 사람들은 훈련이 부족해서 자신을 충분히 발달시키지 못한다. 탐구를 하는 과정이 삶에 중요한 흥미가 된다는 것을 모른다(이윤석이 매일 2시간씩 서재에 있고 싶어한다는 것)
그래서 평생교육 통해서 삶과 진리에 대한 능력과 태도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평생교육이란 3가지 의미하에 자신의 희망을 효과적으로 실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개념이다.
*평생교육 개념의 형성
교육의 체제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제안(Learning to be)이 담긴 평생교육은 너무 유토피아적이라고 간주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합리성은 인정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시행에 옮기기는 어렵다고 간주한다.
이러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빠르고 폭넓게 인식되어 갔으며
1970년대 유네스코 총회에서 교육의 과정에 대한 하나의 해석으로써 평생교육을 받아들이게된다.
하지만 이런 개념들은 이론적으로만 발달하고 실제 상황에서는 진척된 바가 없다.
구조에 대한 개혁은 기득권, 전통에 대한 집착, 혁신에 대한 두려움들과 끊임없이 투쟁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
&우리아버지께 평생교육을 받는게 어떤가 하며 제안드린 적이 있다.
아버지는 단칼에 거절하면서 그것은 은퇴후에나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신다.
아버지는 정년에 가까워서 지금 받는 교육이 현실에 쓸모 없다고 생각하셔서 그런건지 아닌건지는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군
은퇴후에 여유가 생기면 받으신단다.
아버지는 한번도 탐구자체가 흥미롭다는 것을 느껴보지 못하셨다.
탐구자체가 흥미롭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것이 스스로를 평생교육의 장으로 이끌것이고 그 안에서 스페셜원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도 느낄 것이다.
탐구자체가 흥미롭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면 공부를 하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고 그것은 먹고사니즘의 영역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먹고사니즘을 초월한 분들이 평생교육의 참여율이 높은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을 마음에 세워본다.
교육의 네 기둥
전통적으로는 알기위한 학습과 약간의 행동하기 위한 학습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유네스코 들로르 보고서에는 네가지 모두 같은 비중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Learning to know(지식+지식 얻기 위한 도구 숙달 - 집중력, 기억력, 사고력)
- 광범위한 지적 배경을 가지고 소수 분야에 전문가(지적 배경으로 다른분야와 의사소통)Learning to do(자신의 환경에 대응 - 배운것을 실천하고 미래의 직업을 준비)
- 육체적 노동은 점차 기계를 제어하는 지능적인 노동으로 변화
- 그래서 엄격한 의미의 기술, 사회적 행동, 팀워크를 위한 소양, 솔선수범 및 진취성의 복합체
- 노동은 점점 탈 물질화 되고 서비스위주로 변화한다. 그래서 기술보다는 인간의 자질, 개인간의 관계를 맺는 능력과 관련된 자질을 고양하는것이 핵심이다.(그것은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달라짐)Learning to live together(함께 활동에 참여함)
- 협력을 위해서는 타인을 발견하고, 또한 목적을 공유하는 경험을 통하여 갈등을 피하는 일
- 타인을 발견하려면 자신을 발견하고
- 다른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반응을 이해해야 한다(역지사지) ->이해가 결핍되면 증오, 폭력화
- 그래서 교사는 아이들의 호기심과 비판정신을 고취시키면서 자신이 아이들의 롤모델이어야한다.(다른사람들을 수용하는 자세)
- 공동의 목표를 가질때 새로운 자신을 찾고 갈등을 극복 할 수 있다.
(스포츠, 문화활동, 인본주의적 활동, 사회봉사에 참여)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갈등의 소멸인지는 의문점이네..(부부싸움은 계속된다)
평소 친구관계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이 공동의 목표가 제시된 활동에 참여했을때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은 Live together의 입장에 부합되는 사람인건가?... 여기의 가정에서 본다면 그 사람은 꽤나 괜찮은 사람
그러면 인성교육의 목표는 평소에 친구관계를 잘하게 하는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것인가? -> 남성중심적, 과업지향적, 결과지향적이다.Learning to be(위 세가지를 통한 궁극적 목표)
-교육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풀고, 스스로 결정하며, 자신의 책임을 모두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특히나 대중매체의 발전때문에 점점 개인의 진정한 필요와 지적, 감성적 정체감은 소외당한다.
&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구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것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요구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무책임하지는 않을까.
- 존재하기 위한 학습의 원리 : 목표 : 인격의 완성 - 자신의 표현 기술 및 다양한 임무를 풍요롭게 하는 것 ->그래서 교육이란 인격의 지속적 성숙을 추구하는 내적인 여행이다.
그래서 모든 개인은 전 생애를 통해 끊임없이 확장되는 교육 환경으로부터 최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리치는 학습망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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