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교수는 완전학습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20명의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 개개인의 컨디션이 다르고 공부에 대한 동기가 다르며 수업에 대한 준비도가 다를텐데 어떻게 완전학습이 가능하겠느냐고, 심지어 오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그 아이는 이 수업의 의미에 대해서 무엇을 느낄 수 있냐고 말하면서 완전학습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갑자기 노교수는 억지를 쓰기 시작한다. 수업의 목표를 낮게 잡으면 가능하지 않냐고


나는 대답한다. 일반적인 발달단계에 맞추어 학교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수업의 목표를 낮게 잡는것이 가능하냐고.


교수는 유토피아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저 가능하다고.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내가 교수에게 반문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완전학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왜 그렇게 교과서를 어렵게 만들어 놓으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