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평생교육의 철학
교육철학자는 교육에 포함되어 있는 몇 가지 일반적 원리, 즉 교수-학습, 교육과정 분석, 교육과 그 교육이 전개되고 있는 사회 사이의 관계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실천이 없는 이론은 공허한 관념론으로 나아갈 뿐이며, 철학적 반성이 없는 행동은 무의미한 행동주의를 초래할 뿐이다.
철학은 근거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진지한 고찰이 없다. 나 또한 그랬고 그냥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지식을 효율적으로 전달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혼자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장학에서도 철학적인 이야기 보다는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교사의 어투, 자세, 수업지도안의 형식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특히나 이 차시가 전체 교육의 흐름에서 왜 이루어져야 했는지에 대한 고찰 보다는 단편적인 교사의 수업 기술 쑈와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 감상, 그리고 그것들을 지적하고 교정하려는 조련사와 유사했다.)
교육 철학에 관한 지식의 정도가 전문교육자, 보조교사, 신임교사를 확연히 구분시켜 준다는 것
경험이 많아야만 전문적인 성인교육자로 등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렇게 행동하게끔 만드는 원리와 이유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교육적 경험을 반성하고 교수활동에 실천함으로써 경험과 이론을 창조적으로 조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공자의 공부론
내적 열망에 이끌린 평생 학습론
왜이렇게 한문이 많은지 개발새발 한문을 어플로 적어가며 하나하나 번역하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공자는 모르는것(무지)가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느껴서 해결해야할 지적 자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표현되는 내적 열망을 자칫 독선, 독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공자는 호학과 정통규범, 그리고 사람다움등을 기준으로 살으면서 인간의 한계 안에서 확실성의 근거를 세우고자 했다.
공자의 공부론을 특징을 살린다면 서양 philosophy는 공자의 호학으로 옮겨진다면 가장 잘 어울린다고 본다.
한, 중, 일의 공부를 대하는 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고 각 나라에서 공부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지 알수 있었다. 중국은 책을 중시하고 일본은 공부를 통해서 얻은 결과를 중시한다. 우리말의 공부를 중국어 그대로 옮긴다면 쿵푸(소림사를 연상케한다) 가 된다. 그것은 단순한 반복, 숙달, 모방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맥락을 드러낸다. 정말 신기하게도 공부는 한중일의 해석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책을 보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의 입장, 한국은 반복, 숙달, 모방, 카피캣이라고 불리던 삼성의 애플따라하기, 평소에 패스트 팔로워 전략등 정말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섬뜩하기도 하다.
오십 유오이 지우학
삼십이립
등 다양한 한문을 찾아가면서 공부했다. 사람은 스스로 배움에 대한 강한 내재적인 지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호기심과 궁금증은 일어날 수 없고 지식과 지혜는 까닭모를 고통의 신호일 뿐이다.
아는 사람은 알필요가 없고 모르는 사람은 알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높은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다시 만나 오른다면
김대중의 명언
15세에 뜻을 세웠다고 하는데 나는 32세가 되어야 이제 뜻이 뭘까 탐구하고 있다. 33세에는 뜻을 세워야 겠다.
공부의 뜻은 사람에 따라 강할수도 약할수도 있는데 이것을 계속 타오르게할 동력은 무지에 대한 분노와 유지의 즐거움, 즉 분과 락으로 풀어가고 있다.
먹고사는것으로부터의 해방
가장 공자적이고 가장 소크라테스 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교수, 그리고 파견교사들은 정말 행복한 직업인것 같다. 자신의 직업에 내재되어있는 기쁨을 느끼면서도 생계에 곤란을 겪지 않는 그야말로 호학의 자세를 가지고 무지에 대한 분노와 유지의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는것. 참 아름다운 일이다. 나도 지금 그러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태어나자마자 다 아는것은 아니니 객관적으로 책이나 스승의 존재가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한사람을 스승삼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무상사(항상스승은 없다)라는 자세를 견지하고 삼인행 필유아사의 자세로 언제 어디든 배울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모든 방향, 모든 시간 어느때나 느낄 수 있는 활동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뜻에 확신을 갖는다는 불혹, 이것의 기준을 공자는 호학, 예, 인에 대해서는 뚜렷한 의식과 양보하기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색다른 길을 갈고 닦다 보면 참으로 가야할 길에 지장이 생길 뿐이다.
가장 뛰어난 지자오 ㅏ가장 어두운 결핍자의 부류는 변화가 불가능하다.
피세와 피인, 공자의 현실참여 및 현실개혁에 대한 중요성 인식
욕파불능(욕심이 생겨서 파할 수가 없다)
공자는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한번 들어오면 매력에 빠져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자공이라는 제자는 공자와 자신의 인문세계를 담장에 비유했는데 나는 담장이 있긴하니? 담장을 세울 터만 보고 있다.
60대에 이순이 되어 다른사람의 말을 듣고도 그안에서 합리적 해석 가능성을 찾아내며
70세에는 지천명이라 이미 욕망과 본능의 충돌을 뛰어넘어서 도덕이 자연스럽게 내면화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공자의 공부 스타일은 주입식이 아니라
학생이 무지하다고 해도 아예 0가 아니니까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실마리를 던져준다. 그러면 학생이 이러한 안내 과정을 통해 스스로 해답을 찾는다.
공자의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학생의 수준을 보고 그에 맞게 n+1의 수준의 문제를 제시하여 학생의 흥미를 떨어뜨리지는 않으면서 학생을 호학의 세계로 이끌어 내는 능력이 탁월했던 사람인것 같다.
나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때론 n+1이 상위 학년에서 제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선행학습 금지법에 해당되어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때 정말 눈가리고 아웅하는 느낌이 든다.
철학이란 필라소피를 번역한 것인데. 당연히 직역할 말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말을 창조해야 했고 밝을 철자를 통하여 학문을 밝히는 학문이라는 의미이다. 다른학문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사람은 호학이 더 정확하다고 표현한다.
성희천 현희성 사희현
성인(聖人)은 하늘과 같아지기를 바라고, 현인(賢人)은 성인이 같아지기를 바라고, 선비는 현인과 같아지기를 바란다
철학이라는 이름때문에 대학에서 잠시 배워야하는 골칫거리인 학문이 되었다는건 당연히 논리적 비약이고, 현실사회에서 철학의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경험해보지 못해서 느껴보지 못한점이 클 것이다.
1. 밝다
2. 슬기롭다
3. 알다
4. 결단하다(決斷--)
5. 철인(哲人: 도리나 사리에 밝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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